갤럭시 S7에 채택된 ‘불칸’의 정체는?
2016.02.22 16:07:53
[미디어잇 최용석]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22일(이하 현지시각)부터 세계 최대 규모의 모바일 전시 박람회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가 열린다. 하지만 정식 개막을 앞두고 벌써 다양한 모바일 신제품·신기술 정보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특히 일반 소비자들이 가장 관심을 두는 스마트폰 분야에서는 LG의 ‘G5’와 삼성 ‘갤럭시 S7/S7 엣지’가 21일 정식으로 공개됐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국내외를 막론하고 들여오는 소식 대다수가 이날 공개된 두 스마트폰 얘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 가운데 삼성의 갤럭시 S7과 S7 엣지는 업계 최초로 ‘불칸(Vulkan)’ API 지원을 선언하며 차세대 게임과 VR(가상현실) 지원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게임과 VR은 차세대 미디어 산업을 이끌 아이템으로 이미 많이 들어서 익숙한 단어지만, ‘불칸’은 일반 소비자들에겐 낯선 단어다. 그러나 관련 업계 전문가들은 불칸 API 지원에 매우 큰 관심을 보인다. ‘불칸’이 얼마나 중요한 기술이길래 삼성의 차세대 주력 스마트폰 발표에 당당히 이름을 드러낼 수 있었을까.
차세대 그래픽 API ‘불칸’
불칸은 각종 애플리케이션에서 하드웨어의 입출력 수단을 더욱 쉽게 제어/이용할 수 있도록 돕는 명령어 모음인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의 일종이다. 특히 불칸은 주로 그래픽 처리에 특화된 API로, 윈도 기반 PC 사용자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다이렉트X(DirectX)’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윈도 운영체제 기반 PC에서는 3D 그래픽을 처리하기 위해 다이렉트X를 주로 사용해 왔다. 반면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 모바일 기기에서는 주로 ‘OpenGL’이란 API를 사용해왔다. 다이렉트X보다 먼저 개발된 OpenGL은 본래 ‘오픈’이란 이름대로 플랫폼과 운영체제 등을 가리지 않는 범용 그래픽 API로 개발됐다. 그러나 PC에서는 윈도 운영체제와 통합된 다이렉트X로 인해 뒷전으로 밀리면서 주로 전문적인 분야와 모바일 쪽에서 주로 사용돼왔다.
불칸은 OpenGL의 후속작으로 지난해 3월 처음 발표됐다. 불칸의 가장 큰 특징은 하드웨어, 운영체제 플랫폼을 가리지 않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다이렉트X가 x86 기반 시스템에 윈도 계열 운영체제를 사용하는 시스템에서만 쓸 수 있는 것과 달리, 불칸은 x86 시스템은 물론 모바일에서 많이 쓰는 ARM 기반 시스템에 리눅스나 유닉스, 안드로이드 등 다양한 운영체제에서 모두 쓸 수 있다.
삼성전자가 갤럭시 S7를 발표하면서 PC 못지않은 품질의 게임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고 자신한 것도 불칸의 이러한 범용성 때문이다. 불칸 API를 사용해 만들어진 게임은 큰 어려움 없이 PC와 모바일 기기 모두에서 구동할 수 있다.
또한, 불칸은 같은 하드웨어에서 좀 더 최적화된 그래픽 성능을 제공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불칸은 기존 OpenGL이나 11버전 이전 다이렉트X 등과 다르게 애플리케이션에서 GPU와 같은 그래픽 하드웨어에 로우레벨 단계에서 직접 접근하고 제어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같은 그래픽 명령을 처리하더라도 CPU를 거칠 필요가 없어 CPU에 걸리는 불필요한 오버헤드(명령처리)를 줄이고 좀 더 최적화된 성능을 끌어낼 수 있다.
실제 로우레벨 단계 API의 장점은 앞서 AMD가 선보였던 API인 ‘맨틀(Mantle)’이 먼저 증명했다. 소프트웨어(주로 게임)와 하드웨어가 모두 ‘맨틀’을 지원하는 경우 사용하지 않았을 때와 비교해 같은 하드웨어에서 약 10~20%의 성능 향상을 보여준 바 있다.
‘맨틀’의 장점을 흡수해 개발된 불칸 역시 비슷한 효율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같은 그래픽을 처리하는데 하드웨어를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인 ‘전력효율’도 높일 수 있다. 그야말로 차세대 모바일기기를 위한 그래픽 API로 안성맞춤인 셈이다.
물론 아무리 뛰어난 API를 사용하더라도 근본적인 하드웨어 스펙과 그에 따른 품질, 성능을 완전히 극복할 수는 없다. 불칸 API를 통해 스마트폰 같은 모바일 기기에서 PC 못지않은 게임 그래픽 품질과 퍼포먼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지만, 그렇다고 PC와 동급이거나 그 이상을 제공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등 모바일 기기에 불칸과 같은 차세대 API를 적용함으로써 그래픽 품질과 성능을 한 단계 더 끌어 올린 것은 분명 의의가 있다.
특히 앞으로 등장할 차세대 VR 콘텐츠는 더욱 강력한 그래픽 성능을 요구한다. ‘최대한 사실적이고 자연스러운 가상현실 구현’이 현재 VR이 추구하는 목표다.
기존 모바일 기기에서 제공하는 ‘장난감 수준’ VR의 성능과 품질을 끌어올리고 뛰어난 VR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서는 불칸과 같이 최적화된 차세대 API가 꼭 필요하다. 삼성의 갤럭시S7 시리즈에 처음 적용된 불칸 API가 주목받는 것도 그 때문이다.
최용석 기자 redpriest@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