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그래픽카드 삼국지’의 향방은?
2016.01.30 00:36:34
[미디어잇 최용석] 그래픽카드의 역할은 당초 PC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사용자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시각적으로 표시해주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하지만 그래픽카드는 이제 총천연색의 화려한 3D 그래픽과 4K를 넘나드는 초고해상도 영상을 부드럽게 재생해준다. 또한 강력한 연산 성능으로 CPU를 보조해 컴퓨터의 연산처리 능력을 가속하는 데 사용되는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그래픽카드(GPU) 시장에서 벌어지는 경쟁 구도는 PC 시장이 침체 분위기를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업계의 관심사다. 그래픽카드의 성능과 기능, 존재 여부에 따라 PC의 기능과 성능, 용도가 크게 달라지므로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부품이기 때문이다.
올해도 그래픽카드 시장은 인텔과 엔비디아, AMD의 3파전 구도가 이어질 전망이다. 하지만 대내외 요인으로 인해 각 회사가 받게 될 성적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인텔, 6세대 ‘스카이레이크’로 그래픽 영토 확장 꾀한다
그래픽카드의 핵심 제조사로 엔비디아나 AMD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인텔이 전 세계 그래픽카드 시장의 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별도의 그래픽카드용 GPU를 생산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CPU 내장 그래픽만 사용하는 PC는 그 수만 해도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래픽카드 시장을 얘기할 때 인텔은 따로 빼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도 없다. 과거 보잘것없던 인텔 내장 그래픽의 성능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급성장했기 때문이다.
6세대 스카이레이크 기반 CPU에 탑재된 인텔 HD 그래픽스 500시리즈는 ‘리그 오브 레전드’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온라인 게임들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성능을 제공한다. 윈도 10부터 지원하는 다이렉트X 12 API를 지원하며, 4K 출력 능력과 HEVC 인코딩/디코딩 가속 지원 등 최신 그래픽 기술 지원 능력도 강화했다.
실제로 각종 벤치마크에서도 엔비디아와 AMD의 10만 원대 이하 그래픽카드와 거의 동급의 성능을 제공하는 것으로 나오면서 10만 원대 이하 엔트리급 그래픽카드 시장이 거의 초토화될 위기에 처했다.
6세대 스카이레이크 기반 CPU가 본격적으로 시장에 공급된 2015년 3분기만 하더라도 데스크톱용 제품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내장 그래픽 성능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2016년 새해 들어서 내장 그래픽 성능이 위력을 발휘하는 노트북 시장에서 스카이레이크 탑재 제품들이 대거 출시되기 시작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내장형과 외장형을 모두 포함한 전체 그래픽카드 시장에서 올해 인텔 내장 그래픽의 점유율이 눈에 띄게 늘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구체적인 전망 수치는 없지만, 적어도 5% 이상의 전체 시장 점유율 향상이 기대되고 있다.
엔비디아, 불투명한 차세대 제품 출시로 불안
최근 2년여간 그래픽카드 시장에서 엔비디아는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전체 그래픽카드 점유율에서는 인텔에 밀리고 있지만, 별도 장착하는 카드형 외장 그래픽카드 시장에서는 경쟁사인 AMD에 대해 압도적으로 우위를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14년 하반기 선보인 ‘맥스웰’ 아키텍처 기반 지포스 900시리즈는 우수한 가격 대비 성능과 높은 전력 효율을 동시에 만족시켜 2015년에도 꾸준한 인기몰이를 유지했다. 출시 초기 부실했던 제품군 구성도 중간급 제품들의 연이은 출시로 인해 대부분 해소됐다.
하지만 엔비디아도 마냥 웃고 있을 상황은 아니다. 지포스 900시리즈의 뒤를 이을 차세대 제품군의 현재 진척도가 미적지근한 상태기 때문이다.
‘파스칼’이라는 코드명으로 알려진 엔비디아의 차세대 GPU 아키텍처는 16nm(나노미터) 제조 공정을 도입하고 차세대 고성능 HBM(고대역폭 메모리)을 탑재해 비약적인 성능 향상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엔비디아 GPU의 생산을 독점하고 있는 TSMC의 16nm 제조 라인의 수율은 여전히 정상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생산 우선순위에서도 애플 등 대형 수주 업체에 밀린 것으로 알려지면서 당초 올해로 예정된 ‘파스칼’ 기반 제품의 출시 일정에는 먹구름이 낀 상태다.
일단 충분히 안정화된 기존 28nm 생산 라인을 통해 지포스 900시리즈의 변형 제품을 선보임으로써 급한 불은 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동안 패퇴를 거듭해온 AMD가 대대적인 반격을 예고하고 있어 안심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엔비디아가 올해도 계속 상승세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불투명한 차세대 제품 출시 일정을 확고히 해 기존 자사 제품 사용자들을 확실히 묶어 두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AMD, 사면초가에서 벗어나 반격의 깃발 올리나
엔비디아와 달리 AMD는 그래픽카드 시장에서 지난 2년 동안 패전을 거듭했다. 2014년 초까지만 해도 나름 괜찮았던 ‘라데온 200시리즈’의 성적에 안도한 나머지 소비자들의 니즈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헛손질만 거듭했다.
라데온 200시리즈의 뒤를 이어 출시한 라데온 300시리즈는 기존 200시리즈의 ‘재탕’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새로운 것을 기대했던 소비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게다가 경쟁사인 엔비디아가 지포스 900시리즈를 공격적인 가격으로 출시하면서 강점이었던 ‘가격 대비 성능’도 힘을 쓰지 못했다.
고심한 AMD는 업계 최초로 차세대 HBM 메모리를 채택한 ‘퓨리(Fury)’ 시리즈를 2015년 여름에 공개해 분위기 반전을 노렸지만, 낮은 생산 수율과 그로 인한 공급 부족, 가격 정책 실패로 인한 비싼 가격 등이 겹쳐지면서 분위기 반전에 실패했다.
또 막연하게 진행되던 그래픽카드 개발에 전담팀을 새로 꾸미고 부사장급 수장을 세워 새로운 추진력을 확보했다. 화질 개선 효과가 있는 프리싱크(Free Sync) 기술을 베사(VESA) 표준 기술로 공개하는 등 자사 주도 기술을 업계 표준으로 채택되도록 유도하면서 ‘아군 진영 확보’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제품 공급선도 다양화에 나섰다. 엔비디아처럼 TSMC에 GPU 생산을 전부 맡기는 대신, 차세대 GPU의 생산을 14nm 제조 공정을 성공적으로 도입한 삼성에 맡긴 것이다. 특히 엔비디아의 차세대 GPU 생산 계획이 TSMC로 인해 불투명해지면서 AMD와 삼성의 만남은 다시금 재조명받고 있다.
AMD의 차세대 GPU 제품이 예정대로 올해 출시되고 ‘퓨리’ 시리즈의 시장에서의 실패를 만회하게 된다면 그동안 일방적으로 빼앗긴 시장 점유율을 회복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으로 업계 전문가들은 내다 보고 있다.
2016년이 이제 막 시작된 만큼 시장의 흐름이 업계에서 예측한 대로만 흘러갈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다만 영토를 더욱 안정적으로 확장하려는 인텔과 잘 나가는 현 상태를 최대한 오래 끌어보려는 엔비디아, 절치부심하고 반격의 칼을 갈고 있는 AMD가 벌이는 ‘그래픽카드 삼국지’는 올해도 흥미진진하게 펼쳐질 것은 분명하다.
최용석 기자 rpch@it.co.kr